말씀

최경천
안식일예배

가시나무 십자가

최경천 · 2026년 09월 04일

나를 대신하신 십자가 사랑 안에 쉬어갑시다

설교 요약

우리는 왜 그토록 자신을 크게 보이려 애쓰는가? 인정받지 못하면 서운하고, 무시당하면 가시를 세우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예배하고 봉사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자신의 선함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가시나무 십자가’는 이 불편한 진실 앞에 우리를 세운다. 신앙의 시작은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아니라, 내 힘으로는 참된 선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정직한 고백에 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예수님의 질문은 행동 몇 가지를 고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일깨운다.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까지 비추는 산상수훈 앞에서 우리의 자부심은 무너진다. 바울의 “내 속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라는 고백이 비로소 나의 고백이 된다. 그러나 이 깨달음은 절망의 끝이 아니다. 아픈 줄 알아야 의사를 찾듯, 자신의 죄를 아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를 향해 열리는 문이다. 침례를 집례하려고 검은 가운을 입었는데, 어느새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이 있다. 죄인임을 고백하는 자리에서조차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유명인과 찍은 사진, 내세우고 싶은 경력, 남보다 앞선 순서도 같은 마음을 비춘다. 설교는 이를 ‘블러핑’이라 부른다. 자신을 크게 포장할수록 가시는 날카로워지고, 곁에 있는 사람은 가까이 오기 어려워진다. 이 이야기는 남을 판단하기보다 내 마음을 돌아보게 한다. 그런 우리 앞에 놀라운 장면이 펼쳐진다. 십자가에 달릴 처지였던 바라바는 풀려나고, 예수님이 그 자리에 서신다. 가시 면류관을 쓰고 나무에 달리신 주님의 모습은 마치 가시나무처럼 보인다. 가시 돋친 우리가 받아야 할 자리를 주님이 대신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에 나오는 이유는 우리가 충분히 거룩해서가 아니다. 부족한 우리를 놓아주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뿐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도 보여준다. 이제 하루의 중심에 십자가를 모시자.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솟을 때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찬양과 봉사 속에서도 나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기를 구하자. 가족과 이웃에게 가시를 세우는 대신, 내가 받은 용서로 그들을 품자. 우리는 하나님이 포기한 존재가 아니다. 주님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며 살리신 사람이다. 그 사랑 앞에 자주 무릎 꿇을 때, 메마른 신앙에는 감사가 돌아오고 우리의 삶은 누군가를 주님께 이끄는 빛이 될 것이다.

핵심 포인트

  • 자신의 죄와 무력함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로 나아가는 시작이다.
  • 가시나무가 스스로 포도를 맺을 수 없듯, 참된 선의 열매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근본적인 변화로 맺힌다.
  • 자신을 크게 보이려는 허세와 교만은 가시가 되어 사람들을 밀어낸다.
  • 바라바 대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내어주셨다.
  • 십자가는 우리가 용서받았으며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신 귀한 존재임을 보여준다.
  •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과 마음의 중심에 둘 때 예배와 봉사, 일상은 감사와 사랑의 빛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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